112
애틀랜타 출신 4인조로, 벅헤드의 클럽 "112" 무대에서 숀 콤스 눈에 띄어 그 클럽 이름을 그대로 팀명으로 삼고 배드보이 레코드의 두 번째 R&B 팀이 됐다. 노터리어스 B.I.G.와 메이스가 피처링한 데뷔 싱글 "Only You"(1996)로 빌보드 R&B 차트 상위권에 올랐고, 데뷔 30주년을 맞은 2026년에도 토탈·케이스와 함께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RNB Station에서 다룬 아티스트를 모아봅니다.
애틀랜타 출신 4인조로, 벅헤드의 클럽 "112" 무대에서 숀 콤스 눈에 띄어 그 클럽 이름을 그대로 팀명으로 삼고 배드보이 레코드의 두 번째 R&B 팀이 됐다. 노터리어스 B.I.G.와 메이스가 피처링한 데뷔 싱글 "Only You"(1996)로 빌보드 R&B 차트 상위권에 올랐고, 데뷔 30주년을 맞은 2026년에도 토탈·케이스와 함께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Q-Tip과 Phife Dawg를 중심으로 한 미국 힙합 그룹으로, 재즈와 소울을 접목한 사운드로 90년대 힙합을 대표했다. 《부메랑》 사운드트랙에서는 유일하게 온전히 힙합인 트랙 'Hot Sex'를 맡아 발라드 위주였던 앨범에 다른 온도를 더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R&B 싱어로, 두 번째 정규앨범 One in a Million에서 팀버랜드·미시 엘리엇과 협업하며 트립합·드럼 앤 베이스를 끌어온 실험적 프로덕션과 담담하고 절제된 보컬로 새로운 R&B 사운드를 제시했다. 2001년 요절 이후에도 영향력이 이어져, 2026년에는 앨범 30주년과 사망 25주기를 기리는 대규모 추모 무대가 에센스 페스티벌에서 열렸다.
재즈 보컬리스트 Mary Stallings의 딸로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힙합 프로듀서 Dred Scott과 함께 1997년 데뷔 앨범을 완성했다. 신시사이저 중심이던 당대 R&B와 달리 라이브 연주와 재즈 화성을 결합한 사운드로, 네오소울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기 직전 이미 그 흐름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5년 듀오 Groove Theory의 보컬로 데뷔했으며, 그룹이 활동을 멈춘 뒤 2000년 남편과 단둘이 완성한 데뷔 솔로 앨범 [Infinite Possibilities]로 독립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재즈와 R&B 사이를 오가는 장르 융합적 사운드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자신의 레이블 Bliss Life Records를 세워 메이저 시스템 밖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디트로이트 출신 건반주자로, 파라먼트-펑카델릭에서 조지 클린턴 곁을 지키며 프린스·맥스웰 등의 세션에 참여한 오랜 사이드맨이었다. 무명 시절의 J 딜라에게 MPC 사용법을 직접 가르친 인물로도 알려져 있으며, 2004년 뒤늦게 낸 데뷔 솔로 앨범 Waltz of a Ghetto Fly의 타이틀곡을 J 딜라가 프로듀싱하고 조지 클린턴이 노래하는 순환 구조로 완성해 디트로이트 훵크·소울·하우스·힙합 계보를 한 곡에 압축했다.
Anderson .Paak은 캘리포니아 옥스나드 출신으로, 드럼을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는 독특한 원맨 밴드형 퍼포먼스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다. Dr. Dre와의 협업을 계기로 발매한 두 번째 앨범 *Malibu*가 힙합과 소울, 펑크를 넘나드는 사운드로 큰 호평을 받으며 네오소울과 힙합소울을 잇는 현세대 R&B의 대표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쿠바계·푸에르토리코계 혈통의 뉴욕 브롱크스 출신 재즈-소울 싱어. 클래식 성악을 정식으로 공부했고, 세 옥타브 반에 이르는 음역대와 감정을 우선하는 창법으로 알려졌다. 여러 유명 가수가 먼저 녹음했던 "This Time I'll Be Sweeter"를 1978년 데뷔 싱글로 발표해 자신의 대표곡으로 만들었으며 2024년 세상을 떠났다.
열여섯 살에 초기 여성 힙합 그룹 더 시퀀스를 공동 결성하며 커리어를 시작해, 세션 보컬과 R&B 트리오 버티컬 홀드를 거친 뒤 서른일곱에야 데뷔 솔로 싱글 "No More Rain (In This Cloud)"으로 자기 이름을 걸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거절할 때 쓰던 말을 그대로 곡 제목으로 가져왔고, 글래디스 나이트 앤 더 핍스를 샘플링한 이 곡은 2000년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드 최우수 솔로 R&B/소울 싱글을 수상했다. 2025년 3월 앨라배마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2002년 데뷔 싱글 "Foolish"로 빌보드 핫100 10주 연속 1위에 오르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R&B 가수다. 여리고 담담한 보컬이 특징이며, 데뷔 앨범을 통해 2000년대 R&B를 대표하는 신인으로 자리잡았다.
본명 Kenneth Edmonds, LaFace Records를 L.A. Reid와 함께 이끈 프로듀서 겸 싱어송라이터다. 부드러운 팔세토 보컬로 직접 노래도 부르며, 1992년 영화 《부메랑》 사운드트랙을 L.A. Reid와 총괄 프로듀싱해 90년대 초 R&B의 지형도를 만든 인물 중 하나다.
뉴에디션 멤버였던 Ricky Bell, Michael Bivins, Ronnie DeVoe 세 사람이 결성한 R&B 그룹으로, 힙합 비트와 R&B 하모니를 결합한 뉴 잭 스윙 사운드를 대표한다. 데뷔 싱글 "Poison"(1990)은 빌보드 핫100 3위, 빌보드 핫 블랙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90년대 R&B의 스트리트 감성 흐름을 이끈 곡으로 평가받는다.
1946년 미시간 머스키건 출신의 소울 싱어로, 열여섯 살이던 1962년 데뷔 싱글로 R&B 차트 7위에 올랐으나 이후 오랜 무명 시기를 겪었다. 1972년 머슬숄스에서 녹음한 앨범이 발매 직전 취소돼 30년 가까이 묻혀 있었을 만큼 굴곡진 경력을 지녔고, 2000년대 들어서야 비평가들의 재발견을 받은 거칠고 그릿 있는 알토 보컬이 특징이다.
2006년 두 번째 정규 앨범 *B'Day*로 R&B와 팝을 오간 대표적인 솔로 아티스트다. 니요가 컨트리 발라드로 구상했던 "Irreplaceable"을 R&B 프로덕션으로 다시 다듬어 10주 연속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려놓으며 커리어 최장수 1위곡으로 만들었다.
Bilal은 필라델피아 출신의 네오소울 보컬리스트로, 소울콰리언스와 함께 활동하며 실험적인 보컬 스타일을 선보여 왔다. 두 번째 앨범 *Love for Sale*이 레이블의 발매 거부와 유출 사태를 겪고도 얼터너티브 R&B의 선구적 작품으로 재평가받으며, 이후 *Airtight's Revenge* 등으로 이어지는 커리어의 기반이 됐다.
빌 위더스는 항공기 부품 공장 등에서 일하다 뒤늦게 음악을 시작한 싱어송라이터로, "Ain't No Sunshine"이 히트한 뒤에도 한동안 직장을 그만두지 않을 만큼 신중한 태도를 지켰다. 1977년 발표한 "Lovely Day"는 후반부 18초짜리 롱노트로 유명하며, 지금까지도 그의 가장 사랑받는 대표곡으로 남아 있다.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가 이끈 1990년대 R&B 그룹으로 뉴잭스윙 사운드를 대표한다. 1996년 발표한 'No Diggity'로 빌보드 핫100 4주 연속 1위와 그래미상을 거머쥐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필라델피아 출신 4인조 R&B 보컬 그룹으로, 두왑의 하모니 감성을 현대적인 R&B 발라드에 이식한 사운드로 90년대를 대표했다. "End of the Road"는 1992년 빌보드 핫100 13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엘비스 프레슬리의 36년 묵은 기록을 깼고, 이후 "I'll Make Love to You", "One Sweet Day" 등으로 스스로 기록을 경신했다.
1985년 런던에서 결성된 영국의 애시드 재즈 밴드로, 1990년 보컬 은디아 대븐포트 합류 후 "Never Stop"으로 미국 R&B 차트 3위를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2년작 *Heavy Rhyme Experience, Vol. 1*에서는 대븐포트의 보컬을 완전히 빼고 갱 스타·마스타 에이스 등 래퍼 열 명에게 앨범 전체를 맡기는 실험을 감행해 재즈 그루브와 힙합의 접점을 만든 밴드로 평가받는다.
19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R&B 보컬리스트로, 모니카와 함께한 "The Boy Is Mine"으로 먼저 빌보드 1위를 경험했다. 다이앤 워렌이 쓰고 데이비드 포스터가 프로듀싱한 "Have You Ever?"로는 누구와도 이름을 나누지 않은 단독 명의의 첫 1위를 기록하며 신인에서 단독 스타로 발돋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