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etry — Say Yes: 아이슬리 브라더스가 거절한 노래, 25년 만에 투어 이름이 되다
안드레 해리스와 마샤 앰브로시우스가 로널드 아이슬리에게 주려고 쓴 곡은 퇴짜를 맞았다. 대신 자신들이 부른 노래가 플로트리의 유일한 빌보드 히트가 됐고, 두 사람이 10년 만에 다시 뭉친 전국 투어의 이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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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해리스와 마샤 앰브로시우스가 로널드 아이슬리에게 주려고 쓴 곡은 퇴짜를 맞았다. 대신 자신들이 부른 노래가 플로트리의 유일한 빌보드 히트가 됐고, 두 사람이 10년 만에 다시 뭉친 전국 투어의 이름이 됐다.

"사랑은 서두른다고 오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말과 가스펠 한 소절에서 출발한 노래가 모타운 최고의 히트곡이 됐다. 오늘로 발매 정확히 60주년을 맞는다.

리한나의 "Umbrella"를 공동 작곡해 이름을 알린 작곡가 테리우스 내시는, 그 신뢰를 등에 업고 데프 잼과 솔로 계약을 맺었다. 19년 뒤인 2026년, 그는 그 데뷔작의 직속 후속작을 어셔·켈리 롤랜드와 함께 내놓았다.

무명 프로듀서 듀오였던 팀버랜드와 미시 엘리엇에게 곡 하나만 맡기려던 자리가, 알리야의 두 번째 앨범 전체로 번졌다. 그 앨범의 타이틀곡은 30년 뒤 에센스 페스티벌의 추모 무대 이름이 됐다.

재기드 엣지가 1999년 앨범에 실었던 곡은 웨딩싱어를 자처하고 나온 노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Let's Get Married"는 리믹스를 거듭하며 결혼식장의 표준 입장곡이 됐고, 2026년에도 재기드 엣지는 타이레스·탱크·실크와 함께 이 곡을 들고 무대에 오른다.

DJ Shadow와 Gang Starr부터 Drake까지, 힙합 프로듀서들은 수십 년째 이 목소리를 잘라 썼다. 정작 1969년 원곡 "Woman of the Ghetto"는 미국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 프로듀서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가수"로 불린 목소리의 이야기.

1989년에 만들어졌지만 서랍 속에 있던 비트 하나가 1996년 진와인의 목소리를 만나 데뷔 싱글이 됐다. "Pony"는 팀버랜드를 알리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로듀서로 세운 곡이자,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인연이 무대 위에서 다시 불려나오는 곡이다.

1972년, 머슬숄스에서 녹음한 앨범 발매를 앞두고 레이블은 항공권을 도로 반납하라고 통보했다. 선공개 싱글 "Your Turn to Cry"가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Child of the Seventies는 그렇게 30년 가까이 창고에 묻혔다.
다른 가수의 솔로곡을 리믹스해 화이트 라벨 바이닐로 몰래 퍼뜨린 노래가, 같은 듀오의 다음 싱글 성공에 힘입어 뒤늦게 영국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다. 처음 세상에 나온 지 27년이 됐다.

발라드 디바 이미지에 갇혀 있던 머라이어 캐리는 "Genius of Love"를 샘플링하고 올 더티 바스타드를 리믹스에 불러들이는 도박을 감행했다. 그 결과 "Fantasy"는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 핫100 1위에 데뷔한 곡이자, 캐리를 힙합 시장으로 건너가게 한 다리가 됐다.

몽키숄더라는 이름은 몰트맨들이 밤새 삽으로 보리를 뒤집다 얻은 직업병에서 나왔다. 첫 모금은 거칠지만, 잠시 숨을 돌리면 바닐라향이 올라온다. 항공기 부품 공장에서 일하다 늦게 음악을 시작한 빌 위더스의 "Lovely Day"와 함께, 거친 노동 끝에 남는 편안함을 따라가본다.
1973년 미국 최초로 아폴로 극장을 헤드라인한 영국 밴드는, 정작 고국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채 1974년 해체했다. 그 그루브는 이후 40년 넘게 힙합 세대의 턴테이블 위에서 몰래 살아남았다.

RNB Station이 처음으로 직접 만든 곡이에요. 자정 넘어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는 순간을 노래에 담았어요.
팀의 얼굴이던 보비 브라운이 탈퇴한 뒤 흩어질 위기에 놓였던 뉴에디션은, 조니 길과 지미 잼·테리 루이스라는 새 조합으로 답했다. "If It Isn't Love"는 그 재정비의 결실로 그룹에 첫 톱10 히트와 유일한 그래미 후보 지명을 동시에 안겼다.
라산 패터슨은 브랜디의 "Baby"와 테빈 캠벨의 "Back to the World"를 쓴 송라이터였다. 정작 자신의 목소리로 부른 "Where You Are"는 1997년 R&B 차트 53위에 그쳤지만, 동료 프로듀서들은 그를 "우리 시대 가장 저평가된 보컬리스트"라 부른다.

1985년 르네 앤 앤젤라는 "I'll Be Good"으로 R&B 차트 4위에 올랐지만, 이듬해 듀오는 갈라섰다. 12년 뒤 폭시 브라운과 제이지가 이 곡을 샘플링한 "I'll Be"로 빌보드 7위에 오르며, 멜로디는 원곡보다 더 유명해졌다.

해적 라디오에서 시작된 곡이 이름을 두 번 바꾸고서야 UK 개러지 최초로 영국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정작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프린스가 1981년 앨범 수록곡으로 남겨둔 "Do Me, Baby"를 1986년 여성의 시점으로 다시 부른 멜리사 모건은 이 곡으로 R&B 차트 정상에 3주간 머물렀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그의 유일한 빌보드 Hot 100 진입곡으로 남아있다.

무단 샘플링으로 소송당할 뻔한 재즈-힙합 듀오가, 오히려 블루노트 전체 카탈로그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계약을 받아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허비 행콕의 곡은 빌보드 9위까지 올랐다.

언론이 부풀린 라이벌 구도를 직접 농담거리로 만들어버린 노래. 1998년 여름 13주간 빌보드 정상을 지키며 브랜디와 모니카 모두에게 커리어 첫 1위를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