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her — U Remind Me: 다른 그룹을 위해 쓴 노래가, 어셔에게 첫 그래미를 안겨주다
무명 듀오가 자기 그룹을 위해 써둔 곡이 우연히 L.A. 리드의 손에 들어가 어셔의 세 번째 앨범 리드 싱글이 됐다.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가 다듬은 이 곡은 어셔에게 두 번째 넘버원이자 첫 그래미를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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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듀오가 자기 그룹을 위해 써둔 곡이 우연히 L.A. 리드의 손에 들어가 어셔의 세 번째 앨범 리드 싱글이 됐다.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가 다듬은 이 곡은 어셔에게 두 번째 넘버원이자 첫 그래미를 안겼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목소리를 가진 이 가수는 평론가들에게 종종 Chaka Khan과 비교됐다. 정작 데뷔 전 몇 년간은 Chaka Khan을 비롯해 Gladys Knight, Sting, Anita Baker의 백업 싱어로 무대에 섰다. 1989년 발표한 "Congratulations"는 그의 유일한 빌보드 Hot 100 진입곡이자 지금까지 남은 대표곡이다.
1984년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가 프로듀싱한 이 곡으로 셰럴은 R&B 톱10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2년 뒤 로버트 팔머가 커버해 빌보드 2위까지 오르면서, 원곡을 부른 그녀의 이름은 뒤로 밀려났다.

버번 브랜드 이름에 얽힌 청혼 전설과, 사랑을 더는 못 기다리겠다고 고백하는 70년대 소울 발라드. 둘 다 '기다림'이라는 같은 감정을 정반대 방향에서 이야기한다.

"그 곡이 몽환적이고 트랜스 같아서 늘 좋아했다" — 프린스 비는 스판다우 발레의 80년대 신스팝 발라드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게 완성된 곡은 사운드스캔 도입 이후 첫 빌보드 핫100 1위곡이 됐다.
필라델피아 오픈 마이크 무대의 시인을 더 루츠가 발견해 스튜디오로 데려갔고, 그렇게 나온 데뷔 앨범이 네오소울의 레퍼런스가 됐다. 11년 만에 신보를 내고 이달 초 투어를 시작한 지금, 그 출발점이었던 노래를 다시 걷는다.

패티 라벨의 1983년 곡을 빌려온 이 듀엣 한 곡이, 빌보드 핫100 10주 1위를 지키며 데스티니스 차일드 멤버들의 솔로 앨범 발매 일정까지 뒤바꿔놓았다. 유튜브 10억 뷰를 넘긴 2000년대 대표곡이다.

앨범에서 통째로 빠진 뒤 4년을 묵혔던 곡이, 영화 사운드트랙 마감에 쫓겨 급히 꺼내지면서 조의 커리어 최대 히트가 됐다. 남자의 서투른 고백을 이렇게 절절하게 부른 곡은 드물다.

물리적 싱글 없이 빌보드 R&B 차트 1위에 오른 최초의 곡. 아내를 향한 마음을 담아 쓴 이 발라드는, 2020년 팝 스모크의 샘플링으로 새 세대에게도 다시 발견됐다.

오디오 투의 힙합 브레이크비트 위에 소울 보컬을 얹은 이 곡 하나로, 열여덟 살 신인은 '퀸 오브 힙합 소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매리 제이 블라이즈의 이야기다.

뉴 잭 스윙 전성기에 정통 슬로우 잼으로 승부한 조니 길의 발라드. 케니 지의 색소폰과 애프터7의 코러스를 등에 업고 R&B 차트 1위에 오른 이 곡은, 25년 뒤 캐시미어 캣·아리아나 그란데와 릴 모지의 샘플링으로 새 세대에게도 다시 발견되고 있다.

이 곡은 Bofill이 부르기 전 이미 네 명의 가수를 거쳤다 — Martha Reeves는 B면에 묻었고, Linda Lewis는 타이틀곡으로 냈지만 큰 반향은 없었고, Marlena Shaw와 Roberta Flack까지 녹음했다. 정작 이 곡을 대표곡으로 만든 건 1978년, 재즈 레이블에서 데뷔한 무명 신인이었다.

레코드사들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흑인 여성 보컬 자리가 이미 찼다"는 편지를 보냈다. 1990년 데뷔작은 일본에서만 발매됐고, 미국에는 5년 뒤에야 상륙했다. 그 사이 어렵게 세상에 나온 1992년 앨범의 "With Open Arms"에는 17초짜리 롱톤과 여섯 옥타브를 넘나드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아버지의 레코드 컬렉션에서 소울을 독학한 런던 소년이, 보이밴드와 브릿팝이 차트를 지배하던 해에 데뷔 싱글을 냈다. 처음엔 45위로 조용히 끝났지만, 1년 뒤 리믹스가 이 노래를 17위까지 다시 불러세웠다.

어머니를 앗아간 유방암을 그대로 진단받은 보컬이, 재건 수술 대신 황금빛 유방 모형을 택했다. 같은 시기 완성한 앨범이 5년 만에 금색 바이닐로 돌아온 지금, 그 사이의 이야기를 짚는다.

13살에 만난 두 소년이 우연히 만난 프로듀서 덕에 2주 만에 산타나의 "Maria Maria"를 함께 썼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데뷔 앨범은 끝내 정식 발매되지 못했다. "Black Rose"는 그 앨범 안에 묻힌 조(Joe)가 써준 발라드다.

아홉 살에 엘라 피츠제럴드와 광고를 찍고, 열한 살에 스타서치에서 우승했던 아이가 있었다. 데뷔작은 나이 때문에 묻혔지만, 두 번째 앨범 타이틀 그대로 '내면의 아이'를 벗어던지고 재발견됐다.

뉴욕증권거래소 객장에서 일하던 남자가 뉴 잭 스윙의 개척자가 됐다. 데뷔 9년 뒤 낸 다섯 번째 앨범에서, 그는 커리어 최대 히트곡을 만났다.

텍사스 웨이코의 10대 다섯 명이 뉴 재즈 스윙의 거장 테디 라일리를 만나 만든 곡이 빌보드 핫100 정상까지 올랐다. 그룹의 처음이자 마지막 1위였다.

'그냥 친구 사이'라는 제목의 이 데뷔 싱글은, 사실 1966년 Bobby Hebb의 클래식 소울 곡 위에 지어졌다. 30여 년의 시차를 건너 완성된 네오소울의 입구.